오늘 오자마자 마셔 보았지요.
많은 극찬을 들었던 차이고, 평소 좋아하던 분께 추천을 받은 차라 더욱, 기대를 많이 했던 것도 사실.
검은 색 틴을 받아든 순간부터, 왠지 가슴이 도근 도근... 뭔가, 되게 경건한 마음마저 드는 거예요.
'엄청, 신중히 다루어 주어야 겠구나'- 란 생각이 드는 게... 마치 고귀한 댁 아가씨를 맡게 된 교사의 기분?
정확한 g량과 물양을 맞추어, 시간까지 완벽히 맞춰 가며 차 두 잔 분량을 우려 냈죠.
첫 찬 마신 순간, 뭐랄까... 음, 이게 홍차인가, 녹차 인가... 싶은 게, 상당히 맛과 향이 녹차를 닮아 있더라구요.
예전에 저희 어머니가 제주 다원에서 어린 녹차잎을 사와, 끓여 주신 적이 있는데,
그 때의 느낌과 아주 흡사한 게...
녹차 중엔 '작설'이란 게 있어요. '참새 혀'란 뜻인데, 찻잎이 그만큼 작고, 여려서 붙은 이름이죠.
어린 새싹만 따서 만든 만큼 연하고, 고소하고... 정말로 순수한 맛이라 해야 할까요.
녹차 특유의 푸릇하고, 떫은 맛이 전혀 없죠. 정말로 '순하다...!' 란 느낌이 드는 녹차.
티피 아쌈의 첫 맛은 그런 작설차와 왠지 많이 닮았어요.
아쌈 특유의 강렬하고 클래식한 맛을 좋아하는 저로썬,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쌈의 맛이랄까.
저에게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아쌈 티는 언제나 묵직하고 중후한 남성의 맛이었는데,
티피 아쌈은 마치 소녀같아요...
아마빛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.
드뷔쉬의 <아마빛 머리의 소녀>란 곡이 있어요. 너무나 아름다운 피아노 곡이랍니다.
아마빛이란 게 '금발에 가까운 빛나는 갈색 머리카락'을 뜻하는데, 어쩐지 홍차의 골든룰을 닮았죠.
조용한 티 타임의 배경 음악을 원하시는 분들께 꼭 권해 드리고 싶은 곡이랍니다.
조금 더 진하게 우린 티피 아쌈의 두 번째 잔이 딱 그런 느낌.
아마빛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가 황혼빛 들판에 서서,
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우는 듯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 집니다.
뒤를 돌아, 살짝 웃는 소녀의 수줍은 미소가 참 인상적인... 그런 수색과 맛을 지닌 홍차랄까요.
아쌈에 '소녀'를 떠올리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...
평소 아쌈의 진하고 텁한 맛이 싫어, 스트레이트론 도저히 즐길 수 없던 분들이 있었다면,
티피 아쌈만큼은 꼭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.
밀크티로 마시기엔, 이 여린 아가씨는 좀 아까워요.
우유 없이도 충분히 순하고, 목 넘김이 부드러운 스타일이죠.
저는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쪽을 권하고 싶네요.
'우아하고 순결한, 귀족 소녀를 닮은 아쌈티'.
아마빛 머리카락을 지닌, 홍차 소녀를 만나러 가 봅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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